프로그램

콘서트 ‘동고동락’은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격동의 흐름 속에서 우리가 함께 불러온 애국의 노래(愛國歌)에 담긴 사연과 의미, 그리고 그 시대의 모습을 노래(합창), 내레이션, 춤과 영상 등의 표현기법으로 전달하는 ‘역사와 이야기가 있는 콘서트’로써 1910년대 전후 국내외에 퍼진 도산 안창호의 애국창가운동과 더불어 현행 애국가의 생성과 변천의 역사, 그리고 애국창가운동의 맥을 잇는 민주화 여정에서의 노래운동의 역사를 톺아봅니다.

노래는 오래 되었다고 낡은 노래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노래는 현재와 견주어도 전혀 뒤쳐지지 않은 새로움을 본디 담고 있습니다. 예리하게 시대를 담아내었던 겨레의 노래들에서 새로움을 재발견하여 좋은 노래가 가지고 있는 고유한 화합과 통합의 힘을 찾아 관객들과 함께 신바람 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자 합니다.

프롤로그

아이들의 처음 동요이며 언니와 어머니가 부르는 자장가이자 우리 민족의 대표민요이다.

<새야새야 파랑새야>의 단순한 노래 구조와 선율은 끊임없이 우리 역사 속에서 이 산하를 휘돌고 있다.

제1부

일어서라! 의병

조선의 땅이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으로 점점 붉게 물이 들자 나라를 국난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힘없는 민중들이 분연히 일어서기 시작했다.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 남자만이 의병으로 앞장선 것이 아니었다.

<의병군가>

최초의 여성의병대장 윤희순이 지은 노랫말로 나라와 임금과 조상은 곧 하나다는 표현을 통하여 의병활동의 정당성을 피력하고 일제 침략의 부당함을 강조하였다.

<안사람의병가>

의병대장 윤희순이 지은 노래이다. 윤희순은 “왜놈 대장 보거라. 우리 조선 안사람이 경고한다. 네놈들을 잡아서 처단하고 말 것이다.” 라고 왜놈 적장에게 격문을 보낸 강골한 인물이며, 명성황후 시해 사건 이후 을사조약이 체결되고 전국에서 의병이 일어나자 <안사람의병가>를 지어 여성들의 의병 참여를 독려하여 48세 되던 1907년에 30여명의 여성들로 이루어진 안사람의병대를 조직하였다. <안사람의병가>는 남녀 구분 없이 항쟁의지를 돋우고 민족의 단합을 독려하는 노래였으며, 많은 여성들 역시 나라가 위기에 처해있을 때마다 전통적인 유교제도 하에서의 편견을 딛고 적극적으로 구국운동을 실천해 왔다.

애국가의 역사와 안창호의 애국창가 운동

리 근대음악사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노래를 운동으로서 불렀다는 사실이다. 전 국민이 목 놓아 부르던 애국창가들은 국민통합의 노래였고 위기에서 강건한 힘을 북돋아 주는 우리민족 정신의 지주였다.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안창호의 애국창가운동은 식민지화된 조국에서는 더 이상 불리지 못하고 해외의 한인사회로 확장되어 번져나갔다.

  • <찬미가10번(무궁화가1)>
<찬미가10번(무궁화가1)>

후렴으로 ‘무궁화’가 등장하여 <무궁화가>1로 알려진 이 노래는 1910년대 전후에 우리민족이 가장 많이 부른 애국가류 노래 중의 하나이다. 스코틀랜드 민요 <올드 랭 사인(Auld Lang Syne)> 곡조에 맞춰 불렸다.

<심주가>

도산 안창호(1878~1939)는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이면서 수많은 노랫말을 지은 탁월한 작사가이기도 하다. 뛰어난 웅변가였던 안도산이 1908년 대한협회 총회에서 ‘우리 한국의 전도는 여하한가’라는 주제로 연설을 한 후에 관중과 함께 불렀다고 전해진다. 위기에 처해있는 우리민족을 풍파에 시달리는 배에 비유하여 한 마음으로 힘을 모아, 어서 어려움을 극복하고 독립하여 문명화를 이루자고 노래한다. 민요적 특성상 ‘어야지야 어서가자’인 후렴을 관중들이 본가사와 함께 매기고 받았을 것이 분명하다.

<거국행>

1910년 도산이 독립운동기지를 구축하기 위해 다시 미국으로 떠나기 전, 망명을 암시하며 남긴 노랫말에 도산의 대성학교에서 창가교사로 있던 민족음악가 이상준이 곡을 붙였다. 만주와 미국에서도 널리 불렸다. 정든 조국과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 안타까운 마음과 독립운동을 하기 위해 떠난다는 굳은 의지를 담아 조국에 대한 사랑을 노래하고 있다.

<한반도가>

국문체 시가(詩歌)로 도산의 애국심과 함께 국토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조국찬가이다. 민족이 발 딛고 있는 조상의 나라인 한반도를 충성으로 빛내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1907년 미국에서 귀국하여 신민회와 평양 대성학교를 설립하면서 벌인 애국계몽운동의 일환으로 일제의 침탈이 본격화되던 때에 애국심과 근대정신을 고취하고자 지은 이 시가는 후에 곡이 붙여져 노래로 불렸다.

1919년, 대한독립만세!

1919년 3·1만세운동은 전국 방방곡곡에서 민중이 자발적으로 봉기하여 조선(대한)의 독립을 자주적으로 선언한 한민족 최대 규모의 독립운동이다. 이후, 그 열기는 꺼지지 않고 당년 4월 중국 상해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었다. 국가로는 올드랭사인 곡조의 ‘무궁화가2’가, 국기로는 태극기가 공식화되어 사용되기 시작한다.

<무궁화가2>

1900년대부터 해방될 때까지 국내외에서 가장 많이 불린 애국가이자 빼어난 가사를 담고 있는 항일가이다. 곡조는 올드 랭 사인이다. 특히 애국가의 후렴 ‘무궁화 삼천리 화려강산 대한사람 대한으로 길이 보전하세’는 모든 애국가에도 사용되면서 전 국민의 뇌리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국내외 민족운동진영과 독립군들이 즐겨 불렀으며 모두 국가(國歌)로 여길 정도였다. 1935년경 안익태가 작곡한 곡으로 바뀌어 미주 한인사회에서 불리다가 해방 후 지금껏 ‘애국가’로 사용되고 있는 노래이다. 나라 잃은 설움과 저항

제2부

나라 잃은 설움과 저항

우리 민족은 일제의 지속적인 수탈에서도 잃지 않는 민족혼과 삶의 끈질김을 보여주었다. 끈을 놓치지 않고 삶을 지속해야 조국 광복의 빛을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이때 나라 잃은 설움과 울분을 달래주던 노래들은 치열한 저항이었고 민중과 함께해 온 삶, 그 자체였다.

  • <황성옛터>
  • <타향살이>
  • <나운규의 아리랑>
  • <거꾸로 아리랑>
  • <광복군 아리랑>
<황성옛터>

1932년 왕평 작사, 전수린 작곡의 이애리수가 부른 유행가요. 작곡자가 고향 개성의 옛 궁터 만월대에서 역사의 무상함을 느껴 즉흥으로 만든 가락을 입혀 만든 노래로 신파극단의 막간 가수 이애리수의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불린 이 노래는 당시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타향살이>

1934년 김능인 작사, 손목인 작곡의 노래로 가수선발대회에서 입상한 젊은 가수 고복수의 첫 취입곡이자 이 후, 고복수의 대명사가 된 대중가요이다. 특히 만주로 이주한 동포들은 그리운 고향의 향수를 달래주는 망향가로 눈시울을 붉히며 불렀다.

<나운규의 아리랑>

1926년 영화 <아리랑>에 쓰인 나운규 작사 김영환 작곡의 주제곡으로 기존에 불리던 전통적인 민요풍의 아리랑과 다르다는 측면에서 새롭다고 하여 이름이 붙은 ‘신민요’ 유행가의 대표곡이다. 아낙들은 무성영화 <아리랑>을 보며 변사의 대사 한마디 한마디에 눈물을 흘리며 따라 부르는 등, 이 ‘아리랑’은 큰 대중의 인기를 누렸다.

<거꾸로 아리랑>

공연장의 임검석에서 감시를 하던 일본인 순사를 속이기 위해 노랫말을 거꾸로 해서 불렀다는 진도 아리랑 곡조의 노래이다. 당시 ‘신극단 사건’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보면 무대와 객석에서 아리랑을 함께 부르자 일본인 순사가 재미있다고 멋도 모르고 따라했는데 이후 노랫말의 내용이 발각이 되어 배우들이 체포되었다는 내용이 있다. ‘아리랑 적 4막 중, 1막에서 일본 경관이 취체하여 연극이 중단 되었다.’

<광복군 아리랑>

한국광복국제2지대장 이범석이 노랫말을 붙여 부른 아리랑으로 중국 시안(西安)에 본부를 둔 2지대를 중심으로 광복군가로 채택되어 널리 퍼졌다. 가족과 고향을 떠나 조국을 되찾기 위해 만주로 떠나는 전사의 결사 항전의 의지와 주권회복에 대한 강한 염원을 그린 곡으로 밀양아리랑의 곡조와 후렴을 차용하여 불렀다.

조국의 독립전쟁과 해방의 기쁨

임시정부의 주도로 중국과 연합하여 항일무장 투쟁을 이어가던 대한민국은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하고 한반도 수복작전을 준비하는 도중에 일본의 패전 소식을 듣는다. 드디어 1945년 8월15일 일본제국주의의 항복 선언으로 만민족의 염원인 독립이 이루어졌다. 하지만 해방의 기쁨도 잠시, 곧 바로 이 땅에 38선이 그어지고 철마도 멈춰 서게 된다. 정국은 둘로 갈라졌고 해방의 음악조차 좌우로 나뉜다.

  • <신대한국 독립군가>
  • <광복군제2지대가>
  • <압록강행진곡>
  • <4대문을 열어라>
  • <독립행진곡>
  • <해방의 노래>
<신대한국 독립군가>

미국 남북전쟁 때의 군가였던 조지아 행진곡에 맞춰 부른 작사가 미상의 노래로 1920년 3월1일 임시정부의 ‘독립선언기념축하식’에서 Auld Lang Syne 곡조의 ‘동해물과 백두산이’로 시작하는 애국가와 함께 공식 독립군가로 채택되어 항일의지를 다졌다. 지금도 응원가 등으로 리메이크가 될 정도로 널리 애창되고 있는 독립군가의 대명사격인 노래이다.

<광복군제2지대가>

항일독립운동가이며 주옥같은 여러 독립군가와 한국 최초의 가극 ‘아리랑’을 만든 음악혁명가인 한형석(한유한) 작곡의 노래로 중국 서안에 위치한 ‘광복군 제2지대’의 대표군가이다. 광복군 제2지대는 1945년 광복 바로 직전까지 연합군과의 합동작전과 지하공작을 전개하면서 본토회복작전을 위한 OSS 특수훈련을 실시하던 광복군 정예부대이다.

<압록강행진곡>

광복군으로 활약하며 최초의 독립군가집인 <광복군가집>을 발간하고 100여곡의 군가와 가곡을 작곡한 음악가 한형석(한유한)의 또 다른 1940년대 대표적인 광복군가이다. 도탄에 빠진 동포와 형제를 구하기 위해 압록강 진격을 앞두고 있는 광복군의 결의를 담고 있는 이 군가는 2004년 초등학교 음악교과서에 실리면서 현재까지도 사랑받고 있는 노래이다.

<4대문을 열어라>

박영호 작사, 김용환 작곡의 대중가요로 1945년 8월 광복 후 들뜬 분위기 속에서 해외의 애국지사들을 맞이할 환영준비를 위해 연예계 인사들이 모여 만든 노래이다. 당신 거의 매일 라디오를 통해 들을 수 있었던 조국광복과 독립의 기쁨을 상징하는 노래이며 ‘해방가요’ 제1호로서 의의를 지니고 있다.

<독립행진곡>

1946년에 박태원이 작사하고 김성태가 작곡한 해방의 감격과 미래의 희망을 노래하는 당시 이른바 ‘해방가요’ 중 대표곡이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노래로 계속 구전되었으며 가사에 약간의 변화를 거치고 학생운동의 데모현장에 자주 등장하면서 현재의 민중가요 <해방가>로 살아남았다.

<해방의 노래>

월북음악가 김순남 작곡의 이 노래 역시 1945년에 지어진 해방의 기쁨과 광복의 환희를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도록 만든 ‘해방가요’ 중 하나이다. 해방가요라 함은 해방공간인 1945년부터 1948년까지 조국의 독립과 광복을 주제로 담은 우리말 가사와 외국곡을 차용하지 않은 우리곡조로 된 우리 민족 모두가 자유롭게 불렀던 노래들을 말한다.

분단의 아픔

미국과 소련이 주도하여 그어놓은 정치적 분계선인 38선 때문에 남북으로 오고 가는 고향길이 막혀버린 후 갑작스레 터진 동족상잔의 비극 6·25전쟁으로 남북분단이 고착화되고 만다. 한반도 허리를 가르는 DMZ는 이후 일반인의 발길이 닿을 수 없는 곳이 됐다. 실향민과 이산가족은 아직도 38선을 넘는 꿈을 꾼다.

  • <가거라38선>
  •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가거라38선>

1948년에 발표된 이춘풍 작사 박시춘 작곡 곽순옥의 노래로 광복과 함께 얼떨결에 들이닥친 분단의 비극을 노래한 대표적인 대중가요이다. 해방이 되면 모두가 함께 잘 살 수 있으리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남과 북이 38선에 가로막혀 가족조차 만나지를 못하니 실향민들의 애달픈 마음은 눈물이 되어 흘렀다.

<누가 이 사람을 모르시나요>

1964년 라디오 극본가이던 한운사가 작사하고 신예 작곡가 박춘석이 곡을 붙여 신예 가수 관순옥이 가곡풍으로 부른 동명의 라디오 드라마 주제곡으로 전쟁으로 갈린 남북의 비극을 절절하게 그리고 있다. 1965년 한운사의 드라마를 각색하여 만든 영화 <남과 북> 그리고 1983년 6월 KBS 특별생방송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에서 다시 주제곡으로 쓰였다.

제3부

1970년 민주주의의 싹

1971년 대통령 선거에서 3선을 달성한 박정희는 1972년에 유신헌법을 통과시키고 장기독재의 길로 들어섰다. 엄혹한 유신의 시대, 독재의 억압 속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노래로 싹을 틔운다.

  • <아침이슬>
  • <타는 목마름으로>
<아침이슬>

1970년 김민기 작사, 작곡의 우리나라 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노래이다. 발표 당시의 억압된 군사독재 정치 상황을 은유하는 듯 한 가사로 젊은이들에게 큰 인기를 끌었으며, 1975년 방송금지곡으로 지정되었다. 이후 10월 유신이 끝나고 제5공화국 시절까지 금지곡으로 남아 있었지만, 민주화를 염원하는 학생 청년 지식인들을 대변하는 노래로 널리 불려 왔다. 당시 번안곡 일색의 포크와 복음성가류의 노래에서 벗어나 시대를 아우르는 우리의 최고의 민중가요이다.

<타는 목마름으로>

1975년에 발표된 김지하의 동명의 시에 곡을 붙여 부른 1980년대 대학가에서 구전되어 널리 퍼진 대표 민중가요이다. 민주주의를 ‘너’로 의인화하여 암담한 사회현실에 분노가 들끓는데도 숨죽여 불러볼 수밖에 없는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노래이다.

1980년대 이후의 노래운동 - 민주주의를 위하여

1980년 5월 광주항쟁, 1987년 민주화 대투쟁(6월 항쟁) 이후 사회의 각 부문별로 노동운동·농민운동·도시빈민운동·인권운동·통일운동·학생운동 등이 폭발적으로 성장한다. 1910년 전후의 애국창가운동 이후 70년 만에 분출한 80년대 민중가요운동은 우리 노래운동의 기념비적 성과이다.

  • <님을 위한 행진곡>
  • <이 산하에>
  • <서울에서 평양까지>
  • <불나비>
  • <광야에서>
  • <바위처럼>
  • <헌법 제1조>
<님을 위한 행진곡>

1980년 5월 광주민주화항쟁이 무력으로 진압당한 당시 전남도청에서 사살된 시민군 윤상원과 그보다 먼저 떠난 ‘들불야학’의 박기순의 영혼결혼식이 1982년 망월동에서 열렸다. 두 사람의 영혼결혼식에 헌정하기 위한 노래굿 <넋풀이>가 광주지역 노래패 공동으로 만들어 졌는데 그 노래굿 마지막을 위한 합창으로 <님을 위한 행진곡>이 쓰였다. 백기완의 미발표 시에서 노랫말을 따오고 당시 전남대 학생이던 김종률이 곡을 붙였다.

<이 산하에>

1980년대 ‘노래운동’의 선구자인 문승현 작사 작곡의 노래로 ‘산하 시리즈’ 세 편 중 대표작이다. 조선후기부터 일제 치하에서의 독립운동까지, 한국의 민중운동사를 민족주의적 입장에서 웅장하게 그려낸 곡으로 1절은 동학농민혁명의 통곡을 2절은 3.1만세운동의 함성을 3절은 만주 및 간도에서의 무장독립투쟁의 고난과 1980년대의 암흑의 시대를 헤쳐나가는 꺾이지 않는 투지의 표현을 담고 있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남북통일을 염원하는 민중가요로 택시기사 조재형이 작사하고 작곡가 윤민석이 곡을 붙인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통일가요이다. 1991년 노동자 노래단 4집〈민중연대 전선으로〉에서 발표되었고, 이후 1994년 꽃다지 1집에 수록되었고, 이듬해 신형원 6집에 수록되었다. 신형원 앨범에 수록될 때 가사 일부가 살짝 개사되었다. 작사가의 직업이 택시기사여서 그런지 통일이 된다면 서울에서 평양까지 실컷 택시를 몰고 가고 싶다는 소망이 들어가 있다. 그러나 현실은 그럴 수 없기에 꿈 속에서라도 서울에서 평양까지 달려보고 싶다고 하는 가사가 마음을 아프게 한다.

<불나비>

작사 작곡자 미상으로 남아있는 노래 <불나비>는 1970년 11월 노동자 전태일의 분신 이후로 처음 불리기 시작했다고 추정된다. 노동자 전태일의 죽음 이후에야 학생운동권은 민주화 운동의 확장으로 노동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그 영향으로 <불나비>가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억압당한 노동자의 울분과 투쟁의 의지가 녹아 있는 이 곡은 이후 수많은 노동운동의 현장에서 ‘애국가’처럼 불렸고, 신군부 집권 후에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이 결합하면서 널리 퍼졌다.

<광야에서>

1984년 노래패 ‘소리사랑’의 문대현이 노랫말과 곡을 지어 만든 민중가요로 그 후 가수 안치환과 김광석이 불러 대중적으로도 크게 인기를 얻었다. 1986년 학생운동이 대중화되면서 널리 확산되었으며 학생과 시민이 모이는 학교노천극장에서는 함께 따라 부르기 좋은 노래로 크게 환호를 받은 노래이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6월 항쟁 기념식에서는 이 노래가 마지막에 제창된다.

<바위처럼>

모진 억압에도 흔들리지 않는 바위처럼 굳은 마음을 다해 우리가 가야할 해방의 길을 살자고 노래하는 대표적 민중가요 중 하나이다. 7~80년대에 불리던 번안 가요풍의 민중가요와 4/4박자 행진곡풍의 투쟁가들과 다르게 발랄하고 경쾌한 리듬에 맞춰 추는 율동이 가미된 <바위처럼>은 90년대 집회문화의 새로운 변화를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유인혁이 작사, 작곡하고 노래패 ‘꽃다지’가 1993년에 불렀다.

<헌법 제1조>

윤민석 작사 작곡의 2008년 촛불집회를 상징하는 광장의 노래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전문을 그대로 옮겨 적은 단 세 줄의 가사가 경쾌한 음악에 맞춰 반복되는 형태로 이루어져있어 누구나 바로 따라 부를 수 있는 장점 때문에 가족과 함께 집회에 참가한 어린꼬마들이 제일 기억에 남는 일로 꼽는 것이 <헌법 제1조> 노래를 따라 부른 것이라 한다.

제4부

우리가 부르는 애국가

민중(저항)가요는 집단의 노래다. 이는 개인적인 감성을 자극하는 노래가 아니고 나라와 민족 그리고 통일을 염원하는 자기혁명의 노래이다. 시대와 동고동락하며 이어온 노래의 힘, 언제 들어도 우리 모두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훌륭한 애국의 노래들을 모아본다.

  • <내나라 내겨레>
  • <그 날이 오면>
  • <아름다운 강산>
  • <홀로 아리랑>
  • <아리랑 애국가>
<내나라 내겨레>

1971년 어느 날, 하룻밤 만에 만들어졌다고 하는 김민기 작사, 송창식 작곡의 불후의 명곡이다. 당시에는 애국가를 엉뚱하게 부르면 국가 모독죄가 되던 시절이었고 애국가 대신에 나라를 위한 노래로 국민모두가 함께 자유롭게 부를 수 있는 노래가 있으면 좋겠다는 송창식의 바람에 김민기가 즉석에서 곡을 붙여 만들어진 노래이다. 사무치게 담겨있는 통일에의 꿈은 북녘 사람들이 들어도 거부감이 있을 수 없는 숭고의 경지에 닿아 있어 통일된 후의 ‘우리 겨레 애국가’로도 손색이 없는 노래이다.

<그 날이 오면>

1980년대 중반 작곡가 문승현이 발표한 노동자 전태일을 추모하는 곡으로 노래패 ‘새벽’에서 전태일의 일생을 그린 노래극 <불꽃>의 마지막 곡으로 쓰인 주제가이다. 서정적이면서도 극적이고 격렬한 느낌을 함께 담고 있는 스케일이 큰 노래이어서 합창곡으로 많이 불린다.

<홀로 아리랑>

독도를 소재로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아 만든 가수 한돌이 작사하고 작곡한 노래이다. 가수 신형원이 부른 <터>와 <개똥벌레> 그리고 가객 김광석이 불러 히트한 <외사랑> 역시 한돌의 작품으로 남북의 통일에 대한 의지와 식지 않는 저항정신을 은유적으로 노래하고 있다.

<아리랑 애국가>

대한민국 국민의 오랜 정서와 정신을 대표하고 있지마는 우리 근현대사의 혼돈 속에서 훼손되어있는 현행 <애국가>에 얽힌 문제의 해결을 위한 대안으로 제시하는 문화운동가인 광대 임진택이 새롭게 구성한 ‘애국가’이다. 임진택은 도산 안창호의 작사가 분명한 <애국가> 노랫말은 지키고, 친일과 친나치의 행각이 드러난 안익태가 지은 곡조는 바꾸자는 주장을 하며 우리나라 국민이면 누구나가 알고 있는 민요 <아리랑>으로 바꾸어 부르기를 제안하고 있다.